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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문화

비오는 날 시 모음, 이상희, 류시화, 용혜원 시인 비에 관한 시모음집

by 수결 2025.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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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시 모음, 이상희, 류시화, 용혜원 시인 비에 관한 시모음집

비 오는 날은 감정의 표면이 얇아지는 시간입니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은 어느새 눈물처럼 흐르고, 거리의 색채는 번져 흐리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선명한 감정들이 피어납니다. 오늘은 그런 비의 정서를 담은 비에 관한 시들을 모았습니다.

비 오는 날 시 모음, 비에 관한 시 모음

강은교, 천양희, 류시화, 용혜원, 이상희, 정연복 등 현대 시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각 시에 담긴 세계와 그 울림을 감상과 함께 비 오는 날 시 모음을 풀어보겠습니다.


〈빗방울 하나가〉 - 강은교

무엇인가 창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감상평

이 시는 ‘빗방울’이라는 미세한 현상을 통해 인간 내면의 소통 욕구를 그려냅니다. 창을 두드리는 빗방울은 단순한 자연의 움직임이 아니라, 세상과의 접점을 찾으려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두드리고 싶은 것’은 존재의 외로움에서 비롯된 열망이며, 비는 결국 우리 내면의 목소리를 대신해 주는 존재로 읽힙니다.

강은교 시인 프로필

  • 이름: 강은교
  • 출생: 1945년, 함경남도
  • 주요 작품: 《벽 속의 편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 시 세계: 사랑, 존재, 생명에 대한 서정적 성찰로 대표되는 시인으로, 미세한 감정선을 포착하는 정밀한 언어가 특징입니다.

〈비〉 - 천양희

쏟아지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구에겐가 쏟아지고 싶다.
퍼붓고 싶다.

퍼붓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군에겐가 퍼붓고 싶다.
쏟아지고 싶다.

감상평

짧은 반복 속에 깊은 울림이 있는 시입니다. 천양희 시인의 시어는 감정의 절제를 통해 더욱 강렬해집니다. ‘비를 아는 마음’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 간절함입니다. 비는 감정의 형태이자, 마음이 흘러내리는 물리적 매개로 표현됩니다. ‘퍼붓고 싶다’는 구절은 내면의 억눌린 사랑과 그리움을 강렬하게 토해내는 언어입니다.

천양희  시인 프로필

  • 이름: 천양희
  • 출생: 1942년, 경남 창원
  • 주요 작품: 《귀가》, 《겨울 숲에서》
  • 특징: 단문과 반복을 통한 내면의 시학으로, 비와 눈, 시간 같은 자연 이미지를 통해 감정의 결을 드러냅니다.

〈비가 오면〉 - 이상희

비가 오면
온몸을 흔드는 나무가 있고
아, 아, 소리치는 나무가 있고

이파리마다
빗방울을 퉁기는 나무가 있고
다른 나무가 퉁긴 빗방울에
비로소 젖는 나무가 있고

비가 오면
매처럼 맞는 나무가 있고
죄를 씻는 나무가 있고

그저 우산으로 가리고 마는
사람이 있고…

감상평

이상희의 시는 비 속의 나무들을 통해 인간의 다양한 태도를 비유합니다. 누군가는 비를 정면으로 맞으며 흔들리고, 누군가는 그저 피하려 듭니다. ‘매처럼 맞는 나무’, ‘죄를 씻는 나무’는 각기 다른 인간의 내면을 반영하는 상징들입니다. 자연의 풍경이 곧 인간의 내면 풍경으로 치환되는 점에서, 이 시는 생태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의 풍경〉 - 정연복

비 오는 날
거리에는 꽃이 핀다

알록달록 울긋불긋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걸어 다니는 예쁜 꽃들
송이송이 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스산한 날씨에도

꽃들이 피어
걸어 다니는 꽃들이 피어

세상 풍경이 아름답다
쓸쓸하지 않다.

감상평

정연복의 시는 일상의 풍경 속에서 희망을 찾아냅니다. ‘비 오는 날의 거리’는 우울과 고독의 이미지로 그려지기 쉽지만, 시인은 그 속에서 ‘걸어 다니는 꽃들’이라는 따뜻한 시선을 발견합니다. 이는 우산을 든 사람들의 모습이자, 일상 속에서 여전히 피어나는 삶의 생기입니다. 감정의 빗속에서도 긍정의 시선을 잃지 않는 시인의 낙관적 정서가 느껴집니다.

정연복  시인 프로필

  • 이름: 정연복
  • 출생: 1952년, 충북 청주
  • 주요 활동: 아동문학가, 시인
  • 특징: 일상과 자연을 따뜻하고 맑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순수한 정서와 명료한 언어를 구사합니다.


〈비 온 뒤 아침 햇살〉 - 유승도

나뭇잎 씻어줄래
투명하도록 푸르게 씻어줄래
푸른빛 타오르게 불태울래
벌들의 몸에도 붙어 반짝이며 날아갈래
죽은 나무에도 척 붙어 쓰다듬을래
바위에도 내려앉을래
거름더미에도 내려앉을래
눈부시게 만들래
노란 꽃처럼
한 송이 노란 꽃처럼
세상을 그렇게 만들래

감상평

이 시는 ‘비가 지난 뒤의 세상’을 찬미합니다. 세상을 새롭게 씻어내는 비, 그리고 그 위에 내리쬐는 햇살은 재생과 생명의 상징입니다. 유승도 시인은 자연의 정화력을 통해 인간이 다시 살아갈 희망을 발견합니다. 반복되는 ‘내려앉을래’는 마치 기도의 리듬처럼 울려 퍼지며, 비의 존재 이유를 찬란하게 확장시킵니다.


〈비 그치고〉 - 류시화

비 그치고
나는 당신 앞에 선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내 전 생애를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

푸르름이 아주 깊어졌을 때쯤이면
이 세상 모든 새들을 불러
함께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감상평

류시화의 시는 명상적 고요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비가 그친 후의 정적은 깨끗한 마음의 상태와 닮아 있습니다. 시인은 그 맑은 순간에 자신을 ‘나무’로 동일시하며, 자연 속 존재의 평화로움을 느낍니다. ‘푸르게, 푸르게’라는 반복은 생명력의 확장과 사랑의 지속성을 동시에 암시합니다.



〈봄비 속을 걷다〉 - 류시화

봄비 속을 걷다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봄비는 가늘게 내리지만
한없이 깊이 적신다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일깨우고
죽은 자는 더 이상 비에 젖지 않는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봄비 속을 걷다
승려처럼 고개를 숙인 저 산과
언덕들
집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의 뿔들
구름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여러 해만에 평온을 되찾다

감상평

류시화의 또 다른 시에서는 ‘비’가 곧 ‘삶의 증거’로 등장합니다. 죽은 자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구절은 생과 사의 경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봄비는 생명을 깨우는 동시에, 존재의 덧없음을 일깨웁니다. 이 시의 리듬은 느리지만 깊고, 독자에게 명상의 시간처럼 스며듭니다.


〈보슬비〉 - 김진학

가기 싫어 울던
그 땅 위에
꽃비 내린다

가면 또 그만인 길
한 많은 길 위에
춤추는 살풀이

그리도 너 좋아하던 비였지만
비 오지 않는 날은
하루에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하는
미안한 내 얼굴에
피가 흐른다

감상평

‘보슬비’는 조용히 스며드는 슬픔의 비유입니다. 잔잔하게 내리는 비는 애도의 감정과 닮아 있습니다. ‘한 많은 길 위에 춤추는 살풀이’라는 표현은 한과 위로가 교차하는 한국적 정서를 압축한 명구입니다. 김진학의 시는 ‘비’를 슬픔과 사랑의 언어로 승화시킨 서정시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슬비 내리는 날〉 - 유창섭

젖고 있었다
아니 젖는 듯 젖고 있었다

간간이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거꾸로 된 세상이 온통
떨어지며
박살이 나고 있었다

남의 이야기 듣는 듯 내가
내 가슴의 이야기 들어야 하는
어느 날의 목마름

감상평

유창섭의 시는 내면의 침묵을 빗방울의 리듬으로 풀어냅니다. ‘젖는 듯 젖고 있었다’는 표현은 감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비가 내리지만, 그 젖음은 완전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는 마음속 공허함과 회복되지 못한 슬픔을 드러냅니다. 시인은 빗소리를 ‘내 가슴의 이야기’로 환원하며, 존재의 고독을 응시합니다.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 용혜원

내 마음을 통째로
그리움에 빠뜨려 버리는
궂은비가 하루종일 내리고 있습니다.

굵은 빗방울이
창을 두드리고 부딪치니
외로워지는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

비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면
그리움마저 애잔하게
빗물과 함께 흘러내려
나만 홀로 외롭게 남아 있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로
모든 것들이 젖고 있는데
내 마음의 샛길은 메말라 젖어들지 못합니다.

그리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눈물이 흐르는 걸 보면
내가 그대를 무척 사랑하는가 봅니다.
우리 함께 즐거웠던 순간들이
더 생각이 납니다.

그대가 불쑥 찾아올 것만 같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대가 보고 싶습니다.

감상평

용혜원의 시는 감정의 서정성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리움의 매개체이며, 내면의 눈물과도 같습니다. 반복되는 ‘비 내리는 창’의 이미지는 외로움의 시각화를 돕고, 감정의 정직한 진동을 만들어냅니다. 사랑과 이별의 감정이 섬세하게 교차하는 시입니다.

용혜원  시인 프로필

  • 이름: 용혜원
  • 출생: 1952년, 전남 담양
  • 특징: 사랑과 신앙, 인간 내면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서정시로 유명하며, 감성적 언어와 단순한 구조로 독자에게 쉽게 다가갑니다.

〈장대비 내립니다〉 - 양재건

꼭두새벽부터 장대비 내립니다
이렇게 하면 속 시원하냐 하며
으스대듯 내립니다.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강바닥을 위해

시름의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는
환자들을 위해
너희들 울음 쌓느라 애쓰고 애썼다며
으스대며 장대비 시원하게 내립니다.

하나에도 벅차고
지키기 힘든 사랑도
장대비 같이 와~하며
몰려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름은 이래서 좋고
장대비도 이래서 더욱 좋습니다.

감상평

양재건의 시는 비를 인간의 감정 대리자로 의인화합니다. ‘장대비’는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을 상징하며, 인간의 고통과 자연의 울음을 하나로 묶어냅니다. 그 울림은 단순한 비의 묘사를 넘어, 삶의 무게를 해소하는 정화의 리듬으로 이어집니다.


〈소나기 같이, 이제는 가랑비 같이〉 - 서정윤

소나기같이 내리는 사랑에 빠져
온몸을 불길에 던졌다
꿈과 이상조차 화염 회오리에 녹아 없어지고
나의 생명은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불꽃이 되어 이글거렸다.

오래지 않아 불꽃은 사그라지고
회색빛 흔적만이 바람에 날리는
그런 차가운 자신이 되어 있었다.
돌아보면
누구라도 그 자리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순간의 눈빛이 빛나는 것만으로
사랑의 짧은 행복에 빠져들며
수많은 내일의 고통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폭풍 지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자리
나의 황폐함에 놀란다
이미 차가워진 자신의 내부에서
조그마한 온기라도 찾는다
겨우 이어진 목숨의 따스함이 고맙다

이제는 그 불길을 맞을 자신이 없다
소나기보다는 가랑비 같은 사랑
언제인지도 모르게 흠뻑 젖어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반갑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잔잔함을 지닌 채
다가오는 가랑비
한없이 가슴을 파고드는 그대의
여린 날갯짓이 눈부시다
은은한 그 사랑에 젖어있는 미소가
가랑비에 펼쳐진다

감상평

이 시는 사랑의 변주곡입니다. 젊은 시절의 사랑이 ‘소나기’였다면, 이제는 ‘가랑비’처럼 잔잔하고 지속되는 감정으로 바뀝니다. 서정윤은 감정의 폭발과 평온함을 대비시키며, 인간의 성숙을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젖는다는 동일한 행위 속에서, 감정의 질감이 달라지는 삶의 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서정윤 시인 프로필

  • 이름: 서정윤
  • 출생: 1959년, 서울
  • 주요 작품: 《홀로서기》,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 특징: 감정의 진실성과 절제된 어조로 대중에게 사랑받는 시인입니다.

결론

비는 단순히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정화를 상징하며, 때로는 슬픔, 사랑, 회복, 사색의 언어가 됩니다. 오늘 읽은 시들은 비를 통해 각자의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모두 공통적으로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시도입니다. 어떤 이는 창밖의 비를 통해 그리움을 느끼고, 또 어떤 이는 빗속에서 삶의 온기를 발견합니다. 그렇게 비는 언제나 시인들의 언어가 되어, 우리의 마음속에도 조용히 내리고 있습니다.

PS: 시인들의 프로필을 추가하면서 사진을 보니, 젊었을 때는 매력적이고 멋지고 예뻤던 시인들이 나이들어가면서 인상이 많이 망가지신 분들도 계시네요. 반대로 나이 들었음에도 인상 좋게 나이가 든 시인들도 있네요. 시인의 얼굴은 더더욱이 그들의 마음 씀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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