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의 종 풍습 언제부터?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일본식 축제
해마다 12월 31일 밤 12시가 되면 서울 종로 보신각에는 수많은 인파와 방송 카메라가 모입니다.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종 33번 타종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상징적인 연말 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오랜 전통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유한 풍습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야의 종이라는 행위가 언제, 어떤 경로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인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야의 종 풍습의 기원, 일본 문화와의 연관성, 일제강점기와 방송 기술의 영향,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 의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야의 종 풍습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많은 오해와 달리 조선 시대에는 해가 바뀌는 순간을 기념하며 종을 치는 풍습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조선 사회의 시간 감각은 철저히 음력 중심이었고, 새해의 출발점 역시 양력 1월 1일이 아니라 음력 정월 초하루였습니다. 설날을 앞두고 백성들은 고향으로 이동하거나 차례와 세배를 준비하느라 분주했지, 혹한의 밤에 도성 한복판에 모여 종을 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당시 종은 의례적 상징물이 아니라 행정적 도구에 가까웠습니다. 한양의 보신각 종은 매일 밤 통행금지의 시작과 해제를 알리기 위해 울렸으며, 그 기능은 매우 실용적이었습니다.
- 통행금지 시작 시각에 울린 종 - 인경 28번
- 통행금지 해제 시각에 울린 종 - 파루 33번
이 종소리는 질서 유지와 치안 관리를 위한 신호였을 뿐, 새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의식은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제야 풍습과 불교적 배경

제야의 종 풍습의 실질적 기원은 일본에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섣달그믐밤, 즉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에 절에서 종을 108번 치는 제야노카네(除夜の鐘)라는 불교 의식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여기서 108이라는 숫자는 인간이 가진 번뇌의 수를 상징하며, 종을 한 번 칠 때마다 번뇌 하나를 떨쳐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풍습은 일본 불교 문화와 깊이 결합되어 있었고, 신년 의례로서 대중적 인기를 누려 왔습니다.
- 108번 타종 - 인간의 번뇌 제거 상징
- 절 중심 행사 - 불교 의례 성격
- 섣달그믐밤 시행 - 새해 정화 의미
이러한 일본식 제야 풍습은 단순한 민간 행사라기보다 종교적 의례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제야의 종 도입

제야의 종 풍습이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점은 일제강점기입니다. 이 시기 일본의 문화와 관습은 강압적이든 자연스러운 교류이든 다양한 경로로 조선 사회에 유입되었습니다. 제야의 종 역시 그중 하나였습니다. 다만 초기에는 오늘날의 보신각이 아니라 남산 일대에 있던 일본 사찰의 종이 중심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이 행사는 대중적 전통이라기보다 도시 일부 계층과 식민 통치 하의 문화 행사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풍습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기술의 발전, 특히 라디오 방송의 등장에 있었습니다.

라디오 방송과 제야의 종 전국화
1927년 경성방송국의 개국은 조선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소수만 누리던 문화가 전파를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방송국은 청취자 수를 늘리기 위한 상징적인 콘텐츠를 필요로 했고, 새해맞이 제야의 종은 매우 매력적인 소재였습니다.
- 1928년 첫 시도 - 자연음 방송 계획 실패
- 이후 남산 일본 절 종 타종 소리 생중계
- 청취자 폭발적 반응
집 안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는 경험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고, 이로 인해 제야의 종은 단숨에 전국적인 연말 이벤트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시점에서 제야의 종은 이미 일본식 풍습이었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서는 점차 ‘새해의 소리’로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보신각 종과 해방 이후의 변화
해방 이후 제야의 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보신각 종은 본래 조선 시대 도성의 시간 관리 도구였으나, 갑오개혁 이후 기능을 상실하고 오랜 기간 방치돼 있었습니다.

1946년 3월 1일, 해방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보신각 종이 울렸으나 이는 상징적 이벤트에 그쳤습니다. 제야의 종으로서 보신각 종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3년, 한국전쟁 이후였습니다. 폐허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평화와 재건을 기원하는 의미가 더해졌고, 이때부터 보신각은 제야의 종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왜 33번을 치는가
보신각에서 종을 33번 치는 이유는 일본의 108번 타종과는 다른 맥락을 지닙니다. 이는 조선 시대 종 타종 횟수와 불교적 세계관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 28번 인경 - 밤의 시작, 휴식의 의미
- 33번 파루 - 새벽의 시작, 활동 개시 의미
불교에서는 하늘이 33개 층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며, 제석천이 다스리는 33천 사상이 존재합니다. 새해 첫 순간에 33번 종을 치는 행위는 단순한 시간 알림이 아니라,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우주 질서에 고하는 상징적 의식으로 재해석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제야의 종은 불교적 의미를 지닌 행사로 정착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제야의 종 의미
오늘날 제야의 종은 종교적 의미보다는 사회적 상징성이 더 큽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집단적 의식으로 기능하며,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전국적으로 공유됩니다. 정치인, 사회 각계 인사, 시민 대표들이 함께 타종에 참여하는 모습은 공동체적 연대의 상징으로 소비됩니다. 동시에 이 행사는 관광 자원, 미디어 콘텐츠, 도시 이벤트로서의 성격도 강해졌습니다.
일본식 축제라는 비판적 시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야의 종이 일본식 풍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부정하기 위한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수용과 변형 과정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한국 사회는 이 풍습을 그대로 모방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33번 타종이라는 독자적 형식과 역사적 의미를 덧입혀 재구성해 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식민지 잔재를 무비판적으로 계승한 것이 아니라, 선택적 수용과 재해석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진짜 새해 풍습

흥미롭게도 조선 시대 기록을 살펴보면 새해와 관련된 풍습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동국세시기에는 연종포라는 행사가 등장하는데, 이는 새해를 맞아 대포를 쏘아 귀신과 잡귀를 쫓는 의식이었습니다.


종소리가 아닌 화포 소리로 새해를 맞이했다는 점은 오늘날의 제야의 종과는 상당한 거리감을 보여줍니다. 이는 조선 사회의 세계관과 의례 문화가 얼마나 달랐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입니다.

결론
제야의 종은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고유 전통이라기보다, 일본의 불교적 풍습이 일제강점기와 방송 기술을 통해 한국 사회에 정착한 행사입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보신각 종과 결합하면서 한국적 의미를 덧입었고, 오늘날에는 한 해의 마무리와 새로운 출발을 상징하는 대표적 연말 의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풍습의 기원을 정확히 이해한 위에서,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입니다. 제야의 종은 이제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역사적 경험을 거쳐 재구성한 현대적 의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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